태초에 연재가 있었다

미스테리아 2018년 3월호 기고글.

미스테리아 18년 3월호


“이날 나는 내친김에 현장 주변의 거리 측정을 해보았다. 사건 당일 오휘웅 씨가 다녔던 코스를 따라서, 그것도 그가 말했던 시간대에 걸어보았다. 먼저 숭의동 로터리변에 있었던 불교회관에서 8시 5분에 출발, 약간 빠른 걸음으로 시화상회 자리까지 걸어오니까 8시 15분쯤이었다. 오 씨는 그때 두 씨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인삼주를 한잔 얻어마셨다고 하니 3분쯤 머물렀다고 쳤다. 8시 18분에 칠공주사진관 자리에 갔다. 1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8시 19분. 여기서 오 씨는 사진을 찾고 두어 마디 대화를 했다니 3분쯤 머물렀다고 쳐서 8시 22분. 다시 시화상회로 오는 길에 군고구마를 샀다니 도보 1분에 지체 시간 1분을 보태어 8시 24분에 시화상회에 도착했다는 얘기가 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조갑제 지음, 한길사 펴냄, 1986년 2판 178페이지)

1974년 12월 아내는 장애인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지겨워했다. 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두 아이도 함께 죽였다. 내연 관계였던 오휘웅이 공범으로 몰렸다. 사건 직전 날 두 사람이 만난 행적이 빌미가 됐다. 오 씨는 경찰 수사 초기 공범 혐의를 인정했으나 검찰 수사 때부터 부인했다. 아내는 오 씨를 공범으로 지목하다 구치소에서 자살했다. 오 씨는 진술을 번복한 이유에 대해 경찰이 수사 당시 “콧구멍에 물을 붓고 발바닥을 곤봉으로 때렸다”고 했다. 검사, 1∙2심 판사 모두 오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 씨는 1979년 사형됐다. 형장에서도 사법부를 저주했다.

악마는 개념어가 아니라 디테일에 숨어 있다. 살인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아내의 주장과 범행 당일 오 씨의 동선이 일치하는지에 숨어 있었다. ‘미세한 1분 1초의 차이’를 알아내기 위해 서른아홉 살의 월간지 기자는 수사 기록에 적힌 오 씨의 동선을 직접 걸었다.

이 월간지 기자가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이며, 조 대표의 책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는 1986년 출판된 이래 양심 있는 여러 법조인∙언론인들의 전범이었음은, 이제 제법 알려졌다. 진부한 책 소개를 하기 위해 글의 첫 단락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내러티브 논픽션 또는 이야기 논픽션의 지속가능한 생산은 시스템의 산물이다. 과거에 그랬고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요즘 이 고민을 하고 산다. 14년의 《한겨레》 기자 경험이 이 고민에 답을 주기보다 질문만 더할 때, 맥주잔을 내려놓은 손은 늘, 이 책을 집는다. 『인 콜드 블러드』(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시공사 펴냄)보다 문장은 심심하고 『마인드헌터』(존 더글러스·마크 올셰이커 지음, 이종인 옮김, 비채 펴냄)보다 캐릭터는 밋밋한 이 논픽션을 말이다. 온전히 한 사건을(살인 사건), 인물(주인공과 조연)에 초점을 맞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취재하고 기록한 이야기 논픽션의 한국적 원형이기 때문이다.

‘논픽션’이라는 단어는 사실 아무것도 정의하지 않는다. 픽션이 아니라는 부정의 개념만 존재한다. 이 글이 고민 대상으로 삼는 것은 현재 한국 출판 시장의 대세 논픽션인 각종 에세이, 여행기, 맛집 기행 등의 ‘에세이형 논픽션’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특정 시간에 걸쳐 벌어진 행위를 중심으로 취재한 내러티브 논픽션이다. 『논픽션 쓰기』(서소울 옮김, 유유 펴냄)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미국 언론인∙작가 잭 하트의 논픽션 교과서 원제가 『Storycraft : The Complete Guide to Writing Narrative Nonfiction』인 것을 보면, 미국 출판 시장에서 ‘내러티브 논픽션’이라는 단어는 이미 어느 정도 시민권을 얻은 듯하다. 한국에서 논픽션의 동의어로 종종 혼용되는 ‘르포르타주’는 물론 인물 전기나 회고록이 모두 이 장르에 속한다.

사람들은 모두 조 대표가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에 대해 “책을 썼다”고 말한다. 틀렸다. 조 대표는 기사를 쓰고 기사를 책으로 펴냈다. 살인 사건은 1974년 겨울 일어났다. 사형 집행은 1979년 9월13일 벌어졌다. 조 대표는 1983년 1월 알고 지내는 교회 집사로부터 오휘웅 씨가 무죄를 주장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취재 착수는 1984년이었다. 조 대표는 당시 《월간조선》 기자였다. 먼저 간단히 취재해 《월간조선》 1984년 9월호(통권 54호)에 ‘추적 취재-물증 없는 사형 집행’이라는 제목으로 30페이지 분량의 기사를 썼다. 추가 취재를 거쳐 1986년 9월 340페이지 분량의 단행본으로 펴냈다.

《경향신문》(1986년 11월 17일치) 은 ‘논픽션 새 文學(문학)장르로 脚光(각광)’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개인의 자전적 얘기나 수기, 사건기록 등을 엮는 논픽션이 새로운 문학 형태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며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등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썼다. 《경향신문》은 논픽션 공모전을 벌였다. 1970년대 《동아일보》도 논픽션 공모전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일간지 저널리즘은 논픽션을 상찬했으나 스스로 논픽션의 생산 기지가 되려 한 적은 결코 없었다.

무엇이 논픽션 생산 시스템인가. 조 대표가 취재에 착수한 시점이 실제 사건이 벌어진 지 10년 뒤, 사형이 집행된 뒤 5년 뒤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조 대표는 오래 취재해, 길게 썼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를 아무리 거듭해 읽어봐도 미국 내러티브 논픽션의 세련된 작법을 참고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톰 울프가 1970년대에 주장한 ‘장면 취재’ 기법[i] 등이 엿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휘웅이라는 캐릭터는 살아 있다.

1975년 7월 《동아일보》는 오휘웅 씨 사형선고를 판결 기사 단신으로 보도했다. 두 문단의 단신 속에서 독자는 오휘웅에게 감정이입할 수 없다. 단신 속 오휘웅은 서른 살 남성일 뿐이다. 독자는 실루엣만 보고 소개팅을 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하는 사람과 같다. 조 대표의 논픽션 속에서 오휘웅은 ‘’일련정종’이라는 일본불교 소수종파의 신자이자 블루칼라이며, 말이 어눌했고 대찬 성격이 아니고, 중키의, 고문에 취약한 한 나약한 인간’으로 독자의 눈앞에 다시 그려진다.

스토리텔러들의 어법으로 말하면 오휘웅의 캐릭터가 잡힌 것이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골방에 있는 작가가 상상으로 포착한 게 아니라 발로 뛰는 기자의 팩트로 포착 가능했다. 조 대표는 톰 울프를 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2011년 인터뷰 때도 조 대표는 내게 톰 울프를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삶의 조건(individuals’ status-life)’을 취재하라”는 톰 울프의 테제를 본능적으로 구현했다. 톰 울프는 논픽션 작가들에게 상투적인 신문 취재를 넘어, 취재 대상의 말투, 취미, 종교, 옷 입기까지 취재하라고 권했다.

오래된 지인의 표현을 빌면, 내러티브 논픽션은 일간 저널리즘이 육포로 만들어버린 사람과 사건에 습기를 불어넣어 살아 있는 이야기로 되살리는 작업이다. 시간과 돈이 걸린다.

과거에는 주·월간지와 출판 시장이 내러티브 논픽션의 생산 소비 시스템이었다. 머릿속에서 ‘극우’나 ‘조갑제’라는 단어를 지워야 한다. 조 대표가 월간지 기자였고 월간지의 호흡에 맞춰 취재하고 글을 썼다는 월간지 시스템을 기억해야 한다. 잡지의 시대였고 활자의 시대였다. 1986년 《매일경제》 보도를 보면, 《신동아》, 《월간조선》, 《마당》 등의 종합시사교양지가 32만 부 팔린 것으로 한국잡지협회는 추산했다. 종합시사교양지는 대부분 시사월간지였다. 1인당 국민 소득이 2742달러(241.6만원)였던 1986년의 가난한 한국민들 중 30만 명이 3000원~4000원의 시사월간지를 사서 읽었다. 1986년 영화 관람료가 2800원 수준이었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1판은 3600원이었다.

과거 저널리즘의 위계 속에서 주·월간지가 가진 독특한 위치도 고려해야한다. 쓰는 것이 우선인 기자가 생존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었다. 조지 오웰이 평생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욕망을 글쓰기에서 결합하려 했던 것처럼, 실수로 머리에 박힌 생선가시같은 작가적 욕망을 저널리즘 본업과 결합하려 한 기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곳이 주월간지였다. 반면 일찌감치 ‘데스크’가 되어, 쓰기보다 첨삭하는 언론 기업의 간부가 되려는 엘리트 신문기자들은 주·월간지 근무를 꺼려했다.

미국∙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태초에 책이 아니라 연재가 있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김선욱 옮김, 한길사 펴냄) 책을 썼다”고 말하는 사람과 ”트루먼 커포티가 『인 콜드 블러드』 책을 썼다”고 말하는 사람은 틀렸다. 그들은 책을 쓰지 않았다. 한나 아렌트는 1963년 논픽션과 문학잡지를 표방한 미국 주간지 《뉴요커》에 나치 전범 아이히만 재판 취재기를 연재했다. 그게 논픽션 책이 되었다. 트루먼 커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도 《뉴요커》 연재 기사였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체르노빌의 목소리』(김은혜 옮김, 새잎 펴냄)는 논픽션이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평생 신문과 문학잡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원작은 책이 아니다. 월간지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에 연재된 기사였고, 기자 마크 보든은 훗날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했다.

한편 잡지 연재 이외에 출판 시장이 논픽션의 공장 역할을 수행했다. 르포르타주의 고전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은 오웰의 자선사업이 아니었다. 당대 영향력이 컸던 출판그룹 ‘레프트 북클럽’의 의뢰로 상당한 취재비와 원고료를 받고 취재와 집필을 했다. 이 북클럽의 회원은 30년대 후반 5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고 알려졌다.

“누가, 왜 내 논픽션을 읽는지 고민하기보다, 먼저 좋은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는 소설가나 논픽션 작가는 저주받으라. 한국 문학가와 기자들이 ‘번역된 한권의 책’으로 소비하는 내러티브 논픽션의 상당수는 살아 움직이는 시스템의 산물이었다. 그것은 관광지에 세워진 성스러운 문학의 기념비가 아니라, 광장과 시장에서 생활인들이 쓰던 벽돌과 바닥재였다.

그런데 지금, 논픽션 공장들이 문 닫고 있다. 내러티브 논픽션 시장의 공장이 되어주던 주·월간지와 출판 시장 모두 어렵다. 2000년대 초반의 웹PC 물결과 그 몇 년 뒤 들이닥친 모바일 파도가 공장을 다 쓸어갔다. 미국과 일본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일본 논픽션 월간지 《G2》의 폐간은 상징적이다. 고단샤가 2009년 ‘논픽션 미디어’(ノンフィクション メディア)를 표방하며 창간했다. 창간사를 통해 미국 주간지 《뉴요커》를 지향하겠다 했다. 진보적 관점에서 이슈들을 다뤘다. 논픽션 작가가 외국인 노동자와 저임금 일본인 노동자들이 합숙하는 하우스셰어에 한 달간 같이 살며 그 체험을 기록한 르포, 로망 포르노 감독의 촬영 현장 르포 등 꽤 좋은 기사들이 많았다. 그런데 2015년 5월호를 마지막으로 지속된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휴간했다. 지난 해 만난 《G2》의 마지막 편집장은 “아직은 복간 계획이 없다”고 했다.

《G2》는 2015년 5월 ‘휴간호’에서 왜 본인들이 실패했는지를 특집 기사로 다뤘다. 그중 30대 초의 남성인 어느 경제 전문 웹 매거진 편집장에게 기고를 부탁했는데, 이 편집장은 기고문에서 본인이 본 《G2》에 대해 “행인이 없는 길가에 만들어진 고급 레스토랑”이라고 비유했다. 2016년 초 고단샤 본사에서 만난 아오키 하지메(青木肇) 전 편집장은 내게 “지금 돌아보면 고급 레스토랑 음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논픽션은 물론 한국의 모든 활자시장∙매체가 처한 상황이다. 희망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미 유명한 사람이 쓰는 논픽션 말고, 무명의 작가가 좋은 논픽션을 쓰고 좋은 대가를 받아 다시 좋은 논픽션의 생산으로 이어지는 좋은 활자 시장의 전망은, 어둡다.

서로 멀리 떨어진 등대처럼, 몇몇 동업자들이 희미하게 희망의 빛을 쏜다. 그 빛을 바라보면재심 전문 실화를 쓴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작가의 스토리펀딩 연재[ii]도 보이고, 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평전잡지 《바이오그래피》도 보인다.

저널리즘이나 논픽션이라는 단어의 틀에서 벗어날 때 희망의 빛이 더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요즘 유행어는 ‘실화’다. 말장난 같지만, 논픽션은 지지부진한데 실화는 대세다. 퓰리처가 근대 신문 산업을 창조한 뒤 백 수십 년간 저널리즘이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을 다룬 이야기’의 대표 장르였다. 그러나 대중들은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진짜 어떤 일이 벌어진 건가’라는 질문에 대해 점점 더 다양한 종류의 설명을 원하고 있다. 실존인물,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느는 것은 단적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인드헌터>는 그냥 나온 작품이 아니다. ‘정통 르포나 논픽션’은 노동문제 등 진보적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뤄야 한다는 낡은 강박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백 수십 년 전에 퓰리처가 자사의 《더 월드》 기자들에게 “디킨스가 되어라”라고 한 말은, 도리어 지금 울림이 있다.

오해가 있다. 과거 한국에서 ‘실화’라는 단어는 ‘팩트를 각색·가공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대사를 상상으로 지어낸 방송사 라디오 다큐가 예이다. 21세기 한국의 실화는 팩트에 기반한 정통 논픽션을 지향해야 한다. 영화의 원작 논픽션 『머니볼』(마이클 루이스 지음, 김찬별· 노은아 옮김, 비즈니스맵 펴냄)이나 『블랙 호크 다운』(마크 보든 지음, 황보종우 옮김, 청아출판사 펴냄), 『마인드헌터』를 읽어보면, 상상으로 지어낸 대목이 없다. 그러나 재미있을 수 있다. 소설가는 사건의 캐릭터, 장면, 행동을 창조하지만, 논픽션 작가는 캐릭터, 장면, 행동을 취재한다.

지난달 설립된 실화 기획사 ‘팩트스토리’는 이 명제를 생각한다. 독자들이 종이책뿐만 아니라, 모바일 등 다양한 형태로 논픽션을 접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 앞서 어떤 지점에 다다른 동업자들이 비춰주는 서치라이트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제 ‘논픽션 매니페스토’를 쓰려다 ‘구조 신호’에 머문 이 글을 마칠 때다. 그것이 ‘충성고객이 찾는 맛집’인 《미스테리아》 지면에 누를 덜 끼치는 일일 테다. 내러티브 논픽션의 생산 시스템을 새로 찾는 일은 유기농산업의 탄생과 비슷하리라고 팩트스토리는 생각한다. 유기농을 재배하는 농부와, 약간 더 비싸지만 몸에 좋은 유기농을 사는 소비자가 함께 태어나는 과정일 것이다. 올해 상반기 안에 팩트스토리는 실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때 《미스테리아》에 모인 작가나 독자들에게도 유기농 논픽션의 농부나 한살림 회원이 되어달라고 청하려 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를 상찬하기는 쉽다. 중요한 것은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가 만들어졌던 구조다. 구조를 생각한다.

글: 고나무, 실화 기획사 ‘팩트스토리’ 대표. 스토리펀딩 ‘지존파 납치생존자의 증언’, 『아직 살아있는자 전두환』 작가.

[i] 톰 울프는 내러티브 논픽션을 쓸 때 영화 시나리오처럼 장면 구성(scene by scene construction)을 기본으로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ii] 이 연재물은 『지연된 정의』(박상규·박준영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다.

광고

매거진 창간 참고사이트

한국잡지순위

2015(201307-201406)+잡지전문지+정기공사+일람표

참고자료

지정 2011-04 잡지산업 활성화 방안 연구

레퍼런스 해외잡지

고단샤 g2

2008년 기준 전년대비 발행부수 증가잡지 39개. 106개 감소.

30대 여성 타깃. 宝島社 雑誌 inred

20대 여성 타깃. 宝島社 sweet

경제잡지 週刊東洋経済 週刊東洋経済  週刊ダイアモンド

 

 

 

 

토요판 글쓰기 강의 보조자료-Tom Wolfe의 new journalism에 대한 에세이

7.6 저녁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토요판팀이 돌아가면서 하는 토요판기자들의 글쓰기 강좌에서 3강 ‘이야기 논픽션쓰기 맛보기’를 맡았다. 오래전부터 번역해서 소개하려던 Tom Wolfe의 <New Journalism> 일부를 드디어 발췌 번역해 수업 보충교재로 썼다. 그전에도 번역해 수업교재로 쓸 기회가 몇번 있었지만, 문체가 너무 섬세, 화려하고 중문, 복문이 많고, 블랙유머 가득한 문체라, 번역이 고역. 미뤄왔던 이유.

2007년 esc시절 Tom Wolfe의 이 앤솔로지(이 책은 톰 울프의 짧은 서문과 그가 뽑은 좋은 논픽션의 앤솔로지로 구성돼있다)를 처음 읽고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미국 기자들은 지금 한국 뉴스룸의 논쟁을 40년전에 했구나’라는 사실에. 미국 기자들이 천재여서가 아닐 것이다. 글쓰기 시장이 넓어서일게다.

톰 울프의 핵심 주장.

1. 19세기 발자크, 디킨스 등의 사실주의 소설이 했던 역할을 20세기(와 21세기)에는 뉴저널리즘이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2. 여전히 한국 신문편집국에 널리 퍼진 오해. 문체 실험=1인칭. 1인칭 자체가 혁신 아니다. 기자가 1인칭으로 쓰는 거 자체를 대단한 문체실험으로 보는 것, 자체가 신문 편집국이 표현하기, 글쓰기에 무지하고 관심없음을 보여주는 지표. 1인칭은 필요하면 쓰면 된다.

1인칭으로 쓰더라도 1인칭 화자가 주인공이면 안된다. 조지 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길,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적어도 내가 읽은 재밌는 1인칭 논픽션은 다 주인공이 따로 있었다. Hunter Tompson의 Hell’s Angels 나 Norman Mailer의 The Fight 은 자의식 가득한 1인칭 문장으로 쓰여졌지만, 결고 화자가 주인공이 아니다. 헬스 앤젤스의 주인공은 단연 당시 폭주족인 헬스 앤젤스,이고 더 파이트의 주인공은 무하마드 알리이다.

가끔 1인칭 화자가 주인공인데 재밌는 논픽션이 있다. Black like me 처럼. 기자가 흑인으로 변장해 보수꼴통 남부주를 여행했다. 1인칭 화자인 기자가 모종의 ‘액션’을 이끌어내는 것이 재미의 대전제. 결론은, 그냥 자의식만 드러내는 건, 혁신도 아니고, 재미도 없다는 것.

1인칭 문장=혁신,이라는 착각 때문에 내러티브 저널리즘이 과도하게 비난받는다. 재밌게도, 이런 착각, 오해, 비난, 논쟁 등, 지금 한국 신문편집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40년전에 미국에서 있었다.

3. 내러티브 저널리즘=1인칭으로 쓴 문학같은 기사. 톰 울프는 이 오해에 대해 가장 크게 비판. 진짜 뉴저널리즘의 역작들은 3인칭 작품들이라고 지적. 맞는 말.

—————————————————————————

■토요판기자들의 유혹하는 글쓰기 2기-3강 <서사형 기사부터 논픽션까지> 참고자료

◆이야기 논픽션 보조자료

New Journalism (Tom Wolfe·Picador·1975)에서 부분 발췌

  1. 초창기 소설의 문학적 지위

“트루먼 카포티가 <인 콜드 블러드>는 저널리즘이 아니라 그가 발명한 새로운 문학 장르인 ‘논픽션 소설(the nonfiction novel)’이라고 주장했을 때, 내 머리에 섬광이 번쩍였다. 그건 익숙한 ‘아!’ 하는 감탄의 섬광이었다. ‘아! 아주 명민한 필딩(Fielding)식의 전략이군!’ 헨리 필딩이 그의 첫 소설인 <조셉 앤드루스>를 1742년에 출간했을 때 그는 그 책은 소설이 아니라 그가 처음으로 발명한 문학장르인 ‘희극적 산문 스타일의 서사시(the comic epic poem in prose)’라고 주장했다. 그는 <톰 존스>에 대해서도 똑같이 주장했다. 필딩은 그의 책을 지금은 사라진 고대 그리스의 희극 서사시인 <마르기테스>와 비교했다. 필딩의 주장은 물론-그리고 223년 뒤 카포티가 한 똑같은 주장은-자신의 작품에 당대의 지배적인 문학 장르의 특징을 부여함으로써 문단(literary people)이 자신의 작품을 진지하게 대하도록 하려는 시도였다. 필딩의 시대에 지배적인 문학장르는 서사시나 고전적인 시극(verse drama)였다. 소설의 문학적 지위는, 마치 1965년에 카포티가 ‘뉴 요커’에 <인 콜드 블러드>를 연재하기 시작했을 당시 주·월간지 저널리즘(magazine journalism)의 낮은 지위가 낮은 것과 매한가지로, 낮았다.

이와같은 ‘아!’하는 깨달음 덕분에, 나는 재밌는 것을 인지하게됐다. ‘뉴 저널리즘’의 초창기 모습은 영국에서 사실주의적 소설(realistic novel)의 초창기와 똑같다는 것이다. 문학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나는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모호한 말을 반복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데자 뷔’처럼 아주 정확한 디테일까지 반복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18~19세기 소설 문학에 대한 반발이 뉴 저널리즘에도 반복된다. 소설에 대한 반대든 뉴 저널리즘에 대한 반대든, 반발을 사는 새로운 문학 형식은 ‘피상적이다'(superficial), ‘수명이 짧다'(ephemeral)’, ‘그저 오락물(mere entertainment)’, ‘비도덕적이다(morally irresponsible)와 같은 평을 받는다. 19세기 소설에 대한 반대의견과 20세기 뉴 저널리즘에 대한 반대의견 중에 어떤 것은 너무 비슷해서 묘한 느낌마저 준다.”

  1. 신화 vs 리얼리즘

“17세기~18세기 영국에서 사람들이 시에 대해 가진 생각처럼, 소설이 사람들에게 신화적인 인식을 주는 정신적 기능을 한다는 생각이 지금 문학계에 보편적이다. 1972년 소설가 챈들러 브로사르는 ‘진정한 소설은 환상이며 픽션 작가는 선지자(visionary)이다’라고 썼다. 마크 머스키는 1970년대 ‘새로운 문학을 위한 선언’에서 “우리는 미국의 귀가 이야기에 귀를 닫고, 신화와 우화, 패러독스에 귀 닫았다고 생각지않는다’고 헨리 데이빗 소로를 인용하며 주장했다. “신화에서는 초인적인 지성이 인간의 무의식을 사용한다’고 그는 썼다.

수백년동안 소설을 지배적인 문학 장르로 만들어온 소설가의 정신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다. 실은, 그들은 환각 속에서 진짜 신화와 우화에서 등을 돌리는 것이다. 고전적인 운문, 프랑스와 이탈리아 법정 문학이라는 존경받는 전통으로서의 신화와 우화말이다. 현대의 시각으로는 초창기 소설이 얼마나 리얼리즘에 충실했는지 알기 어렵다. 리얼리즘을 위한 리얼리즘! 이 모든 것은 삶에 대한 것이다. 다니엘 데포는 난파선의 선원으로서 자신의 진짜 회고담으로 <로빈슨 크루소>를 썼다. 리차드슨은 자신을 정부로 삼고싶어하는 어떤 남자의 수중에 갇힌 한 실제의 여성을 <파멜라>에서 구현했다. 슬로우 마을에서, 마을사람들은 <파멜라>를 낭독하던 대장장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대장장이는 파멜라가 자신을 좋아하던 남자와 결혼하고 두 남녀가 교회 종을 울리며 축하하는 소설 대목에 다다른 것이다. 19세기 중반에 비평가들은 일상적으로 소설의 축자적 사실관계(literal accuracy)를 체크하곤했다. 마치 그 축자적 사실관계가 광고에 보장된 것이거나 혹은 작가가 지켜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건 흡사 요즘 영화 관람객들이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 제작자에게 ‘이 영화가 30년대 갱들을 다룬 것이라면, 어떻게 주인공이 1941년형 플리머스가 주차된 수족관에서 총을 맞을 수 있죠?’ 따위의 항의 편지를 보내는 것과 같다. 당시 소설가들은 썩 내키지않았지만 불필요한 발품팔기 취재, 즉 ‘파헤치기(digging)’를 일상적으로 했다. 말 그대로 정확하게 쓰기위해서. 취재는 소설쓰는 과정의 일부였다. 찰스 디킨스는 작품 <니콜라스 니클비>를 쓰기위해 필요한 사실(material)을 얻기 위해서 친구의 아들을 찾는척하면서 가명을 써서 악명높은 요크셔의 기숙학교들을 세군데 이상 찾아다녔다.

디킨스나 발자크 같은 사회적 사실주의 작가들은 순수하고 단순하게 리얼리즘 그 자체를 즐겼지만 그런 취향이 그들의 커리어를 가로막기도했다. 둘다 살아 생전에는 예술가로 대접받지 못했다. (발자크는 심지어 당시 프랑스 아카데미에 초청받지도 못했다.) 1860년대 이후, 소설가뿐 아니라 비평가를 포함한 문학인들은 다음과 같은 이론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리얼리즘은 강력한 도구이긴한테 그것이 고차원의 현실이나, 우주적 차원, 영원하 가치, 도덕적 인식, 그러니까 문학이 영적인 임무를 가지고 있다는 그 전통, 즉 신화, 우화 등으로 이끌지 못한다면, 하찮은 것이라는 그런 이론을. 1920년대에 프랑스와 영국에서 벌써 사회적 사실주의는 저물기 시작했다.

대공황이 미국 소설의 사회적 사실주의를 자극해준 덕분에, 유럽의 유럽 문학의 ‘신화 문학 유행’은 다행히 2차대전까지 미국 문학계에 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강해지고 있다. 거의 모든 진지한 미국 작가들은 죄다 대학 졸업자이고 대학에서 그들은 베케트, 핀터, 카프카, 헤세, 보르헤스, 자마친 등을 배운다. 영문모를 난해한-문단(fraternity)바깥 사람들에게는 난해한- 종류의 소설 작품들이 나오는 게 그 결과다. 인물은 개인적 배경이나 개인사가 없으며, 사회적 계층, 인종, 국적 등은 하나도 언급되지 않고, 구체적인 이름도 없고, ‘숲”택지”사막”산’ 또는 ‘바다’처럼 시간성이 없는 공간에서 운명에 이끌려 행동하곤 한다.”

“나는 이들 ‘신 우화주의자들(neo fabulist)’의 무의식적 전략이 다음과 같은게 아닐까 생각한다. ‘리얼리즘은 뉴 저널리스트들에게 선취당했고 우리는 그들과 경쟁하기 어렵다. 그런데 리얼리즘은 해묵은 것(old hat)이다. 그러므로 내게 남은 것은? 가장 근원적이고 순수한 형태의 스토리텔링, 문학이 태어났던 바로 그곳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을까? 신화, 우화, 전설!’….(중략)…리얼리즘 소설의 도구들을 포기함으로써-사실적 대화, 계층을 드러내는 사실(status of life), 시점 등-‘신 우화주의자들은 ‘전기가 (발명된지)오래 됐기 때문에’ 전력을 포기한 전기기술자처럼 되어버렸다.”

  1. 뉴저널리즘은 정말 새로운가?

“뉴저널리즘을 쓰고자하는 많은 기자들이, 창작 기술적 어려움을 해결하기위한 목적으로 ‘내가 거기 갔고, 이것이 나에게 영향을 끼쳤다’와 같은 일인칭 문장(autobiographical format)을 사용한다. 뉴 저널리즘은 종종 ‘주관적’ 저널리즘으로 특징지워진다. 리차드 쉬켈은 ‘코멘터리’에서 뉴저널리즘을 작가가 자기 자신을 늘 무대 중앙에 두는 문학 형태로 이해된다’고 평했다. 실은, 뉴 저널리즘의 최고의 작품들은, 카포티, 게리 테일리스, 브레슬린, 색, 존 그레고리 던, 조 맥기니스처럼, 작가가 철저히 자신을 숨기는 3인칭 시점에서 쓰여졌다. 1960년대 저널리즘의 ‘주관성’ 개념은 다른 쪽에서 또한 생겨났다. ‘뉴 저널리즘’이라는 용어는 ‘편들기 저널리즘'(advocacy journalism)’과 종종 혼동됐다. 신좌파의 부상과 더불어 문학 기술적으로는 구닥다리에 해당하는 ‘빌리지 보이스’의 잭 뉴필드가 자신을 뉴저널리스트로 부르는 것을 보게됐다.”

  1. 리얼리즘의 생리학

“활자는 필름이나 연극무대처럼 이미지나 감정을 창조하기 보다 독자의 기억을 건드리는, 간접적 매개체다. 가령, 술취한 사람이 나오는 장면을 묘사할 때 작가는 취기 그 자체에 대해 쓰지 않는다. …오직 4개의 도구들만이 독자의 기억을 풍부하게 건드릴 수 있다. (글을)장면(scene-by-scene)으로 글 구성하기, 대화, 시점, 그리고 사회적 삶 묘사하기(detailing of status life). 장면 구성과 대화는 활자 작가보다 영화감독이 더 잘 구사한다. 그러나 시점과 사회적 삶의 묘사는 필름보다 활자에서 더 잘 구현된다. 어떤 영화감독도 인물의 마음속으로 관객을 데려가본 적이 없다. 영화감독들은 별걸 다 해봤다.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도 시도했다. 카메라를 주인공의 ‘시점’으로 삼기도했다. 요즘 유행은 메모리 플래시(플래시 백)이다. 그 어떤 것도 영화 속 인물 속의 머릿속으로 당신을 데려가주지 못했다. 어떤 사실주의적 소설들은 매우 성공적으로 주인공의 정신적 삶과 정서적 분위기를 구현했다. 가령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처럼. 이런 소설들은 종종 이 소설들을 영화하는 감독들에게 재난이 된다.”

  1. 취재(reporting)

“신문 기사를 위한 취재에서 이 새로운 형태의 저널리즘으로 옮겨가려는 사람은, 기본적인 취재 단위(basic reporting unit)은 더이상 자료나 정보가 되지 못하며 장면이 기본적인 취재 단위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이는 산문의 복잡한 글쓰기 전략의 대부분이 장면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리포터로서 당신의 중요한 과제는 당신이 취재하고자하는 장면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만큼 충분히 오래 취재원옆에 머무를 수 있느냐다. 다른 취재 비결이나 장인의 취재 비법같은 것은 없다. 이건 순전히 기자의 품성에 대한 시험이다. 취재는 당신이 취재를 많이 해봤다는 이유만으로는 결코 더 쉬워지지 않는다. 최초의 문제는 늘, 생판 남에게 접근해서 그들의 삶에 접근하고 당신이 답을 들을 권한이 결코 없는 질문을 그들에게 던지고, 당신이 애초 보도록 되어있지 않은 것들을 청해서 보는, 그 모든 것들이다.”

새털뉴스3 –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의혹 취재 후기

“위인이나 영웅은 다만 존재하는 것만으로써 수십년,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 사람들의 정신생활을 지배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인 면에서뿐이다. 실제생활에서나 정치라는 힘의 영역에서 그것이 좌우하는 일은 드물다. 그리고 이 사실은 모든 정치적 믿음을 경고하기 위해서 강조되어야한다. 거기서는 뛰어난 인물, 순수한 관념의 인간이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일은 드물고 오히려 가치는 떨어지지만 교활한 족속의 인간, 즉 흑막의 인간이 결정권을 쥐는 경우가 많다…(중략)…나폴레옹이 이미 100년전에 말한 바와 같이 정치라는 것이 현대의 숙명, 새로운 운명이 되어버렸다면 우리들은 자기방어를 위해서 이들 힘의 배후에 숨어있는 사람들을 알아야 하고 그들의 위험한 힘의 비밀을 알려고 노력해야한다.”

독일의 소설가,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제가 ‘문제적 인간’에 관심많은 이유입니다. 지적 허세스럽게 표현했지만, 쉽게 말하면 ‘현실에서 승리하는 나쁜 남자 또는 여자’에 관심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이번 취재는 이런 논픽션 작가로서의 개인적 관심사는 접어두고, 오로지 지금 당장 벌어지는 의혹의 점검과 분석에 집중했습니다.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과 합당해 대선을 치렀던 어떤 인물이 자살합니다. 그가 남긴 메모에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대선 캠프의 핵심 인사 이름이 거론됩니다. 잘 벌어지지 않는 일입니다.

6월18~19 및 22일 삼일간 의정부에 다녀왔습니다. 10여명에게 전화하고 5명정도 만났습니다. 취재포인트는 세가지입니다. 첫째 ‘아버지 홍우준 전 민정당 의원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아는 사이였을까’가 핵심 취재 주제였습니다. 노력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메인기사 홍문종이 사는 법 입니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입니다.

홍우준-헌정회

둘째 그가 과거부터 검찰 수사를 피해왔던, 운 좋은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아버지 홍우준 전 경민학원 이사장 횡령 유죄, 기사입니다. 지역신문 단신입니다. 의정부 지역 현지 취재를 해보니, 아들대신 아버지가 기소된 사건,이라 수군대더군요. 이때 기억해야할 것은 ‘의정부지검은 수사지휘를 잘 했는가’입니다. (저는 ‘검찰’이라는 주어를 싫어합니다. 홍 의원을 수사했던 바로 그 검사,를 떠올려야합니다. 지금 홍 의원과 관련한 보도들을 보며 그 검사님, 무슨 생각을 하실까요?)

셋째, 제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관심많은 인간 분석입니다. 홍문종 의원은 2세 정치인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의정부 지역에서 민정당 소속으로 2선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민정당을 해서 미리 선악을 선 그으면 안됩니다. 지금 반한나라 성향의 독자들도 좋아하는 남재희 전 장관도 민정당 의원을 했습니다. 윤여준 전 장관은 5공 때 청와대에서 일했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활동을 했느냐입니다. 아버지 홍우준 전 경민학원 이사장 기사입니다. 현대사 전공자라면 홍우준 전 경민학원 이사장의 자서전(구술을 작가가 정리했습니다) 새총으로 무지개쏘기 를 흥미롭게 읽을 겁니다. 반공개신교인, 목사, 부동산 투자가(사실 투기에 가깝죠), 인맥관리의 달인 등, 어떤 의미에서 시대를 ‘여러 얼굴로, 독하게’ 살아낸 어느 반공세대의 – 약간 씁쓸한 – 초상이 있습니다.

베일의 기업, 일베 취재후기

1. 지방 남중 남고 나왔다. 당연히, 욕이 일상이었다. 92년에 고교1학년, 94년 전쟁위기때 고3. 96년에 대학갔다. 98년에 군대로 도망갔는데, 많이 맞기도했고, 가끔 때려보기도했고, 욕은 진짜 많이 했다. 아,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러니까 욕은 아마 30중반까지는 한국 남자들에게 일상일 게다.

성기를 가리키는 순우리말 단어를 섞은 욕은 압도적으로 군에서 많이 들었다. 가장 창발적?인 욕은, 훈단에서 들었다. DI(Drill Instructor)들은 훈병이 웃는 모습을 보면 “이 새끼가 날아가는 참새 *지를 봤나, 왜 실실 쪼개”따위의 표현을 썼다. (물론 말만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두달간 거의 매일 접속한 일베는, 적응이 안된다. 내가 딸을 낳은 아빠여서인지 모르지만, 매우 거북하고 어둡고, 습한 정서적 느낌을 주는 일베의 욕 문화가, 나한테는 재미없다. 그러니까 ‘보*아치”자궁에 김치”자궁떨리노’같은 표현에 대체 무슨 재미가 있다는 말인가. 사회학자들은 저런 포스팅에 대해 ‘trolling’ 등 ‘모종의 재미’로 설명하거나, 그도아니면 ‘표현의 자유’로 – 정서적으로 멀찌감치 물러나 – 방관한다.

어쨌든 나는 거북했다.  경향신문 일베 기획 등 그간 일베를 다룬 기사들이 꽤 있다. 일베 욕 문화에 대해서, 그간 여러 논문이나 언론 기획기사에서 ‘경제 불황기 젊은이들의 인터넷 하위 문화sub culture’라는 규정이 많았던 것 같다. 전두환을 찬양하고 말끝마다 애국, 글끝마다 일부심 어쩌고하는 문화가 어떤 의미에서 서브컬쳐란 말인가. 재미도 없다. 당최 재밌는 애국,이란 있기 어려운 것을.

주체의 측면에서도 저런 규정은 현실의 일베와 맞지 않다. 궁금한 분은, 당장 구글에 ‘일베 학력 인증 대란’을 쳐보시라. 일베 회원이 올린 프린스턴 학생증을 볼 수 있다. 비정규직도 아니고, 부자집 아들로 추정되고, 많이 배운 젊은 남자 아이들이, ‘자궁떨리노’같은 아이디로 진보적 정치성향, 여성, 사회적 약자, 조선족, 노무현에 대한 분노를 배설하고 심지어 현실밖으로 걸어나와 대자보를 찢어버리는 곳이 일베다. 최근 논란을 사는 일베 헤비 유저로 알려진 KBS 기자직 신입사원의 아버지는, 공기업의 정직원이다. 안정적인 중산층 출신 젊은 남자 아이인 일베.(*sirylcat님 지적에 따라 글 수정…) 이런 실체를 비교적 잘 규명한 게 시사인 천관율 기자의 기사. 시사인 일베 기획

2. 야스다 고이치의 거리로 나온 넷우익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64371817&orderClick=LEA&Kc= 을 지난해 읽은 뒤, 다뤄보고 싶었다. 고대 박사 일베의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훼손 사건을 취재하러, 팔자에 없이 고대 공대 대학원에 찾아가기고 해봤고, 무튼 삽질 인풋하고 버린 취재가 꽤 많았다. 그러다 기사썼다. 야마는 기업 일베,  주식회사 유비에이치, 전현 운영진 등 세가지. ‘물리적 실체로서의 일베’랄까. 담론 분석은 싹 빼고. (다른 곳에서 꽤 다뤘으므로)

유비에이치 분석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91488.html,

일베 최초 개설주장, 모에명수인터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91420.html

3. 인터넷에서 불쾌하고 공격적인 포스팅으로 관심을 끄는 행위,를 trolling이라 한다. 니찬네루(2チャネル)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일베보다 먼저 생겼다. 개설자 니시무리 히로유키는 이렇게 생겼다. 니찬네루 개설자 니시무라 히로유키.

일베와 크게 다르다. 개설자가 누군지 모두가 알고, 개설자는 트래픽을 끌어모은 결과를 자랑스러워하고, 그것을 다른 기업에 돈받고 팔았다. 보수나 극우로 욕하는 것은 차치하고, 일단 이게 커뮤니티의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상업화 과정. 일베는, 최초 개설자, 과거 운영진, 현재 운영진, 상표권자, 현 상표권자인 주식회사 유비에이치, 이 모두가, 전부, 베일에 가려져있다. 일베는 매달 돈을 내고 SK브로드밴드와 KT의 기업용 서버 상품을 쓰는 사기업이다.

4. 취재의 최종 목표는 ‘전현 운영진의 실체 알리기 및 접촉’이니, 결과적으로는 절반은 실패한 취재. 남은 건, 일베ILBE라는 상표권의 상표권자였던 ‘박마이클용’, 2011년에 ilbe.com도메인 점유자로 갑자기 등장한 Micheal Park, 서울시내 종합병원 의사 박아무개의 관계 입증. 일단 박마이클용=Micheal Park은 입증.

키프리스에서 상표권 조회를 할 수 있다. 검색어에 일베,와 일베저장소를 치면 현재의 일베와 관련해 3개의 상표권을 소유한 박마이클용,의 이름이 나온다. 이자가 등록한 상표권은, ‘일베ILBE’와 ‘일베저장소’다.

trademark2

누구든 볼 수 있다. 박마이클용,은 2013년에 일베의 상표권을 주식회사 유비에이치에 양도한다. 돈을 받고 판 것인지 뭔지는 알 수 없다. 조선닷컴 일베 기사 보면, 2013년에 12억에 팔았다,고 알려져있다. 오보의 가능성이 있다.  일베 웹마스터 스브스 그알에 답변, 에서 일베 웹마스터는 매각을 부인. 그렇다면 박마이클용,은 돈도 받지않고 상표권을 유비에이치에 넘겼다?

박마이클용-도메인등록-최초기록-2011-2

구글에 domaintools를 치고 들어가시라. 거기서 ilbe.com치면 그 도메인의 history가 나온다. (도움말씀 주신 IT 관계자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ㅎ) 보이시나. Micheal Park. ilbe.com도메인 최초 생성은 2003년. 현재의 일베와 전혀 무관하며, 아마 단순하고 발음하기 좋은 도메인이므로, 당시 미국 기업이 무턱대로 점유 선점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3년부터 계속해서 locked상태.

그러다 2011년 2월, 갑자기! 서버가 active된다. 즉, 저 도메인이 한국의 일베사이트와 연동된다는 의미. 등록자(도메인 점유권자)이름이 갑자기 바뀐다. 마이클 박. 상표권자 박마이클용과 Micheal Park의 사당동 주소가 정확히 일치. 남은 건, 박마이클용(=Micheal Park)과 의사 박아무개씨의 관계 밝히는 것.

5. 08년에 한창 초짜 기자 시절이라, 디시인사이드질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일베를 잉태한 09년~2010년 디시인사이드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같은 사람은 구글에 http://archive.org/web/를 치시라. 거기 dcinside를 치면 예전 모습이 나온다.

보이시나. ‘일,베,로’라는 댓글들. 일간베스트 게시물,도 이미 저 때 다 있었다. ‘ㅈ ㅗ ㅈ’ 이라든가 ‘보*’같은 막말문화도 엿보인다. 일단 게시글 목록을 본 인상비평은, 태동기의 디시 일베와 현재의 일베는, 성적인 글, 욕설 등 막말문화를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

2008-디시코갤-일베-2

그러나 결정적으로 과거 일베는 현재 일베와 ‘정치성’에서 크나큰 차이가 있는 느낌. 현재의 일베는, 과거 디시 일베가 모태라기 보다 사실상, 극보수화된 과거 디시인사이드 정사갤이 업그레이드된 느낌.

2008-디시코갤-일베-4 2008-코갤운영자공지-삭제기준

디시 일베 게시글중에, 삭제된 것만 모아놓은 게 애초 일베였다. 최초 개설자 모에명수는 현재 민사소송중이다. 자신이 09년에 만든 ‘원조 일베 저장소’를 ‘새드’가 모방해서 ‘ilbegarage’를 만들었고 이게 현재의 일베가 됐다,는 주장.

주장의 신빙성은 물론, 이런 괴상한;;; IT 취재의 경우, 지방 도시의 스타벅스 테이블 건너편, 내 눈앞에 앉은 이 청년이 모에명수가 맞는지, 부터가 전부, 취재의 영역이 된다. 취재할 때는, 누구도 믿을 수 없으므로. (뭐…당연한거지만). 본인이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고.

모에명수일베-2009-11월12일

이게 모에명수가 제공한 자신이 09년에 만든 일베 화면. 불행히 archive.org에서는 검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조작한 사진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2010-10월-새드-일베개라지-블로그용

이게 모에명수가 제공한 일베개라지 사진. archive.org 에서 ilbegarage.er.ro를 검색해보니…

일베개라지-2010

나온다. 즉, 모에명수 주장대로 일베개라지는 실존했었다. 모에명수의 일베사이트도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쟁점은 ‘모방이 존재했느냐’일 것.

6. 야스다 고이치 형님이랑, 술 한잔 마시고 싶다. (이분 고단샤 논픽션상 수상소감 보니, 주간지 기자였고, 지금도 그렇다…)

일본 기사체, 한국 기사체

1. 총리 관저 드론 공격 시도자 야마모토 야스오는 로운 울프.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689474.html

그의 블로그. http://guerilla47.blog.fc2.com/ 외로운 늑대라는 점에서 김기종씨와 비교할만하지만, 김기종씨에 비하면 훨씬 정상적인 사고를 지녔다는 느낌.

2. 그의 블로그 마지막글 제목은 참고서参考書。여러 책들이 소개돼있다. 중간에 보이시나,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눈에 띈다. 천공의 벌(붕붕 거리는 꿀 빠는 바로 그 곤충 벌). 「天空の蜂」東野圭吾. 단독기사를 많이 쓰시는 중앙일보 특파원 김현기 선배가 먼저 기사화했다.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7675874&cloc=olink|article|default

한국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이 소설. 일본에서는 최근 영화화. http://eiga.com/news/20150410/9/

3. 한국의 근대는 대부분 일본의 근대가 이식된 것,이라는 의견에 나도 동의하는 편. 해방이후 미국의 압도적 영향아래서 사회의 많은 영역이 미국식 근대화를 경험했지만, 언론은 아마 일본의 근대가 가장 많이 흔적을 남긴 직역이 아닐는지.

사스마리는, 케이사츠(경찰)警察、마와리(돌기). 周り. 신문 편집부에서 쓰는 거의 모든 용어. 도비라(속표지)는 일본어 扉。인물사진을 배경에서 오려내는 작업. 누끼. 어원은 벗겨내다,라는 뜻의 일본어 누쿠ぬく。그리고 한국 언론이 사랑하는 단어. 관계자. 칸케샤. 関係者。警視庁関係者によると~경시청 관계자에 따르면~.

수습때 기사체에 ‘~에 따르면’을 쓰지 말라고 교육받았다. 그래서 한겨레 기자 대부분 쓰지 않는다. 그때 1진은 그 이유에 대해 영어의 according to를 직역한 잘못된 영어 번역체이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지금 일본기사체를 보면 그 설명이 과연 맞는건지 의문. ‘~에 따르면’에 해당하는 ‘~니 요루토’라는 일어 구문이 있으므로. (`~니 요루토’라는 일어 구문이, 메이지유신때 영어 according to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표현이 아니라면, `~에 따르면’이라는 한국어 구문은, 일어에 뿌리를 둔 것일듯)

기타 한국 언론 기사에 종종 나오는 클리셰 표현들에 해당하는 일어 표현들. ‘~明らかにしました。’ 아키라카(명확.밝음)니 시마시타. ‘~라고 밝혔다’. `~불꽃을 튀기다. 히바나오 치라스. 火花を散らす。`~의욕을 보이다. 이요쿠오 미세마스 意欲を見せます。.. 뭐 이것뿐이겠냐만…

저 한국 언론의 클리셰 문구는, 죄다 일본 기사체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요새 벚꽃 원산지 논쟁을 보니, 말도안되게 국뽕 맞으신 분들 있던데, 설마하니, 한국 기사체가 원조고 일본 아사히, 마이니치, 요미우리가 따라한 거,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하시는분은, 없겠지.

4. 덤. 후래자삼배,의 어원.

“뭐, 찬 술이라도 돼. 후래자 삼배. 어쨌든 술이 떨어지니깐 손이 떨리고, 이명이 들려서 못 살겠어.” 할멈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고키치를 쳐다봤다.

– 다나카 히데미쓰의 <취한 배>(도서출판 소화) 460p

다나카 히데미쓰. 1913 – 1949. 와세다대를 졸업한 뒤 30년대 중반 고무회사의 경성 지점에서 3년동안 근무. 48년에 식민지 경험을 토대로 한 소설 <취한 배>출간. 49년 스승 다자이 오사무의 묘 앞에서 자살.

요컨대 아직도 한국인들이 술자리에서 외치는 “후래자 삼배”라는 말의 역사가 최소한 70년은 넘는 셈이다. 소설적 재미는 못 느꼈으나, 당시 조선 문단의 뒷풍경을 엿보는 맛이 있다. 노천명, 유진오, 백철 …등등에 대한 묘사들이 나온다.

아직 내공이 모자란 탓에, 일본 기사체 추가 분석글은 나중에 다시.